“신데렐라” 하면 나는 언제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먼저 떠오른다. 내 두 딸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엔 늘 디즈니 공주들이 함께 살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던 시절이었다.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때, “신데렐라”와 “인어공주”, “백설공주” 같은 명작들은 우리 거실을 작은 극장으로 만들었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반복해서 보던 그 시절, 아이들은 주문을 외우며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살라카둘라 멘치카둘라 디디부 바디부!”는 가장 좋아했던 마법의 주문이었다.
영상이 끝나면 거실은 곧 무대로 바뀌었다. 두 딸은 드레스를 입고 엄마, 아빠 앞에서 작은 발레 공연을 펼쳤다. 동작 하나하나에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마치 커튼콜까지 준비된 사랑의 무대 같았다. 나는 매일 밤 작은 극장을 만들어주는 연출자이자 관객이었고, 무엇보다 발레 선생님이었다.
그 기억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진다. 발레 수업 시간에도 나는 그 주문을 꺼내 쓴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공주로 변신하고, 나는 그 환상 위에 발레 동작을 살며시 얹는다. 뿌리에 롤로베, 파세, 아라베스크… 그 순간, 발레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법이 된다.
지난 주말, 우리는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발사모)’ 회원들과 함께 헐리우드의 돌비 시어터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운 거리와 어우러져, 우리는 LA 발레단이 선보이는 “신데렐라” 공연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신데렐라”는 2년 전 사반 극장에서 보았던 같은 작품이었지만, 무대는 낯익으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당시 장면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음악 때문인 것 같았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처럼 선율이 떠오르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음악은 나에게 아무런 잔향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공연 후반부, 마법이 풀리기 직전의 장면에서 익숙한 리듬이 들려왔다. “어? 이 음악… 어디서 들었더라?” 순간 떠오른 이름, 프로코피예프. 맞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특히 로미오와 티볼트가 대치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던 ‘Montagues and Capulets’의 무겁고 위압적인 리듬. 오늘 클라이맥스 장면의 긴장감은 그 음악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묵직한 금관의 울림, 반복되는 리듬, 절정으로 치닫는 구성. 서로 다른 이야기를 운명이라는 공통 주제로 엮어내는 음악적 언어였다.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용수들의 표정이었다. 맨 앞자리에서 본 얼굴 하나하나는 마치 대사를 말하듯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다음엔 무조건 앞자리!” 무용은 동작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전해질 때, 진짜 예술이 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사바사바 아이사바… 얼마나 울었을까.” 딸들을 재우며 자장가처럼 불러주던 “신데렐라” 노래였다. 공연이 끝난 뒤 딸이 말했다. “엄마, 그 신데렐라 노래 생각나.”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용히 흔들렸다. 예술은 잊고 지낸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힘이다.
오늘 본 “신데렐라”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처음 만나는 감정처럼 새로웠다. 같은 작품도 다른 시간에 보면, 다른 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공연장을 나와 거리를 걷는 길, 마음 한구석에 유리구두 한 짝이 조용히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리구두 하나, 기억 하나. 나는 오늘도 예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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