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공연장을 찾지는 못했다. 무대의 공기를 온전히 마시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LA 한국문화원에서 상영된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는 짧고도 깊은, 마치 꿈처럼 스쳐가는 48분이었다.

이 작품은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걸작 <몽유도원도>에서 출발한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꾼 꿈 속 낙원을, 화가는 붓 하나로 종이 위에 펼쳐냈다. 흐드러지는 복숭아꽃, 안개 속 암벽, 잔잔히 흐르는 강물… 그 꿈은 도원, 곧 이상향을 향한 여정이었다. 그 풍경은 이번 무대에서 조용한 몸짓으로 다시 피어났다.

무대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여백의 미’였다. 무대는 비어 있었지만,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손끝 하나, 시선 하나에 담긴 감정들이 과하지 않게, 절제된 방식으로 흘러나왔다. 정적인 공간 속에서 오히려 상상력이 더 크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작품을 보며 떠오른 철학적 개념이 있었다.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 보이는 세계는 본질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처럼, 이 무대의 춤도 어딘가 더 깊은 본질에 닿으려는 몸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닿을 수 없기에 더 간절했고, 그 간절함이 고요한 움직임 속에서 더 크게 울렸다. 춤은 말하지 않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 몸은 조용히 그 사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음악은 공연 전체를 관통하며 긴장감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같은 음을, 같은 리듬을 계속 듣다 보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입을 이끄는 요소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을 환기시키기보다는 한자리에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렇다면 이 무대를 기획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국립무용단은 이번 무대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는 실험을 시도했다. 홈페이지와 공연 자료에 따르면, 안견의 그림 속 굽이진 산세처럼, 현실의 고단한 삶을 지나 도원이라는 이상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을 다양한 감각 요소로 풀어낸 것 춤, 음악, 조명, 미디어아트가 한데 어우러져 몸의 언어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그 질문은 관객의 내면을 조용히 건드렸다.

이번 상영은 LA 한국문화원이 준비한 공연예술 콘텐츠 시리즈의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귀한 무대를 마련해준 한국문화원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멀리 이곳 LA에서도 한국의 예술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다. 익숙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 문득 열리는 예술의 창. 그 순간 우리는 국적을 넘어, 예술이 건네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교민들이 이러한 작품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무료로 제공되었다는 점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일상의 시간 속에 잠시 열리는 예술의 틈, 그 틈을 통해 숨결처럼 스며드는 하나의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예술은 자주, 깊이, 가까이 만날수록 그 힘을 발휘한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삶의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춰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 기회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찾아오기를. <몽유도원무>를 보며, 나는 꿈처럼 스쳐간 한 장면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무용이 아니라, 말없는 철학이었고, 그림자 속을 조용히 걷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예술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몸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진최무용이야기 #한미무용연합 #진발레스쿨 #예술로숨쉬다

#JeanDanceStory #KOADanceFederation #JeanBalletSchool #ArtIn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