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는 특별한 극단이 있다. 젊음의 열정보다 삶의 깊이가 무대 위로 스며드는,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예술 공동체. 직업 배우도 아니고 유명세를 좇지도 않는다. 그저 예술을 사랑하며 “살아 있다 ”는 감각을 노래하고 싶을 뿐이다. 무대는 작지만, 시간의 온기가 스민 이들의 이야기는 넓고 깊다.
이번에 오른 LA극단 작품은 뮤지컬 “ 자! 살자 관광버스 ”는 절망 끝에 선 사람들이 마지막 여행을 떠나며 삶을 다시 발견해 가는 여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할 때마다 객석엔 잔잔한 떨림이 번졌다.
무대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사기꾼 아들의 어머니를 연기한 이경희 씨. 올해 여든. 2년 전 실버 발레에 첫발을 내디디며 나와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시인이며 연극에도 감각을 지닌 예술가다. 또 다른 발레를 도전하며 작은 동작 하나에도 온 마음을 기울이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번 공연에서 그녀는 화려한 몸짓 대신, 낡은 쌈지에서 돈을 꺼내 건네는 짧은 손짓 하나로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미운 자식도 자식이었다. 등을 돌릴 수 없다는 세월이 빚은 어머니 사랑이 그 작은 손끝에서 조용히 퍼져갔다. 그 몸짓엔 아다지오보다 더 느리고 깊은 어머니의 춤이 깃들어 있었다.
뮤지컬 “자! 살자 관광버스” 는 죽음을 향해 달리던 이들이 마지막 순간 “자살자가 아닌 “자! 살자”를 외치며 서로를 껴안는 이야기다. 상실과 절망 속에서도 아주 작은 온기가 다시 삶을 피워 올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경희 씨는 그 메시지를 깊은 숨결처럼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했다.
나는 기억한다. 발레 수업 시간마다 그녀가 빛내던 맑은 눈빛과 작은 동작 하나에도 마음을 다해 연습하던 모습을… 그녀는 연극 커튼콜을 앞두고 살짝 웃으며 물었다. “발레리나 인사를 해도 될까요?” 수줍지만 반짝이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녀는 무대 밖에서도 여전히 꿈을 잃지 않는다. 발레를 배우고, 시를 쓰고, 새로운 무대에 도전한다. 올해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한밤중 바를 잡고 꼿꼿이 자세를 다듬고, 새벽이면 노트를 펼쳐 시를 써내려고는 하루하루. 그녀의 삶은 이제 예술로 피어난 자유의 춤이다.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은 “춤은 영혼의 숨결 ”이라 했고, 니체는 “하루라도 춤추지 않으면 그날은 잃어버린 날 ”이라 말했다. 이경희 씨는 그 말을 삶으로 증명한다. 발레를 추지 않는 순간에도 그녀 안에는 끊임없이 춤이 흐른다.
오늘, 나는 그녀의 용기와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깊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끝내 꿈꾸기를 멈추지 않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다. 춤추지 않아도 흐르는 춤, 숨결마다 이어지는 노래. 우리 모두의 삶도 그렇게, 아름답게 흐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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