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주부 김은아(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녹색 상의)씨가 다른 주부들과 함께 재즈댄스를 추며 즐거워하고 있다.<서준영 기자>
신년기획 시리즈 – 한인타운 24시 (3) 점심시간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한 하루에 약간의 나른함과 약간의 피곤함이 물들기 시작하는 낮 시간은 절반의 하루를 보내고, 나머지 절반을 준비하는 달콤한 자신만의 틈이다. 하지만 한인들은 길지 않은 시간마저 쪼개가며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오전 11시50분. 바쁜 오전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에게는 ‘오늘은 또 뭘 먹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지만, 고민 뒤 찾아올 커피 한잔의 여유와 짧은 오침의 포만감에 일과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회계시즌이 시작돼 1년 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리 회계법인 케빈 천 CPA는 오늘도 아로마 스포츠센터 지하 식당가에서 동료들과 한 끼를 때웠다. 그는 “매년 회계시즌에는 밥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어 고객의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며 “올해는 아로마 스포츠 센터를 담당해 매일 지하 식당가로 직행한다”고 말했다. 12시30분을 조금 넘겨 뚝딱 밥 한 그릇을 해치운 그는 7명의 후배들과 함께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대부분의 한인이 커피, 수다, 간단한 수면 등으로 흘려보내는 점심식사 뒤 자투리 시간이 시작되는 12시35분. 아로마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피오피코 도서관의 풍경이 흥미롭다. 정장을 빼 입고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20∼40대 남녀들이 쉽게 발견됐다.
교육용 완구회사 ‘립프로그’의 한국마케팅 매니저인 신익섭(38)씨는 랩탑을 펼쳐놓고 한국과의 업무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재택 근무를 하는 신씨는 “도서관에 오면 무선인터넷도 되고, 주차도 무료로 할 수 있어 한인타운에 나오는 날에는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업무도 처리한다”고 밝혔다.
한 낮의 여유를 만끽한 직장인들이 모두 자신의 일터로 복귀한 오후 1시. 자녀와 남편을 배웅한 뒤 오전 내내 설거지•빨래•청소 같은 집안 일을 끝낸 주부들이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후 자기 계발에 나선다.
타운 곳곳의 교육기관을 점령한 이들에게는 영어, 요리, 꽃꽂이, 서예, 무용 등에 전념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2004년부터 진 발레스쿨에서 재즈댄스와 요가 등을 배우고 있는 김은아(45) 주부는 “마흔에 아기를 나은 뒤 회복과 체력 강화를 위해 시작했는데 효과도 좋고 비용도 저렴해 아주 만족한다”며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몸도 가뿐해 지고 스트레스도 해소돼 가족들에게 더 충실하게 된다”는 김 주부의 말처럼 한인들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바쁜 일과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의 행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