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자유,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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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 스토리 Interview

내 몸의 자유,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진 발레스쿨’ 진 최 원장

글·사진  김수현 객원기자 bluebirdinmymind@gmail.com

H 한국일보 메거진  June 23.2017

 

기자라는 직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여염집 아낙에서부터 홈리스, 마약중독자, 성공신화를 일군 인물들, 대통령까지. 기자는 누구든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편견이 와장창 깨지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번 인터뷰도 그랬다.

‘진 발레스쿨’ 진 최 원장과의 인터뷰에서 발레가 철학적인 고난이도의 예술이란 걸 알게 된 것은 덤이었다. 자신의 일을 진정 사랑하고 몰입한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건지, 그녀는 인 생 전반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4세부터 시작해 평생, 거의 60년간 발레를 춰왔음에도, 지금도 매주 일요일마다 80세의 러시안 스승으로부터 수업을 듣는다니. 게다가 무려 10년째, 700회가 넘도록 발레 칼럼을 ‘주간 한국’에 쓰 는 첫 번째 이유가 ‘끝없는 배움’ 때문이라는 그녀다.

발레가 몸의 예술에 그치지 않고 “정신 수양이자, 나와 세계와의 교감”이라고 강조하는 그녀에게선 진지함과 당당함이 뿜어져나왔다.

내가 세상의 중심 가냘픈 몸매에 꼿꼿한 허리와 목, 말랐지만 알이 배인 듯 탄탄한 근육질 종아리, 긴 머리를 뒤로 틀어올려 쪽진 헤어스타일, 그리고 살짝 팔자걸음. 흔히 ‘발레리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400여년전 귀족댄스인 발레는 마치 콜셋을 입은 듯 척추를 곧추세우는 자세로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정신을 표현한다고 한다. “이 자세를 제대로 하고 서있기만 해도 땀이 나지요. 발레에 심취하면 철학을 배우는 것과 같고, 내 몸과 이 세계가 서로 넘나드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미술사는 물론이고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철학, 인문학 등을 공부해야 심도있는 표현이 나올 수 있고요.” 그래서일까. 최 원장은 지금도 인문학과 미술서적을 탐독하고, 관련 교수들의 강의를 유툽으로 들으며 공부한다고. 글쓰는 것도 좋아해 이른 아침이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습작한다. 가장 중요한, 몸 단련을 매일 해야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발레계에는 ‘연습을 1일 쉬면 내 몸이 알고, 2일 쉬면 선생님이 알고, 3일 쉬면 관객이 안다’는 말이 있어요.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매일 스트레칭을 해야하는 운명이죠. 제가 아무리 바빠도 1년에 두 번은 모든 일을 딱 놓고 여행을 가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북유럽에 가서 며칠 연습을 쉬었더니, 돌아와서 다시 발레하는데 얼마나 고생했나 몰라요. (웃음)”

토슈즈 신는 70세

‘진 발레스쿨’에는 유치원 나이의 수강생도 많지만, 70세 노인도 꽤 있다.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도, 60세는 넘은 듯한 남성이 발레 레슨에 대해 문의 전화를 해왔다. 뿐만 아니다. 30-40대 엄마가 아이 레슨 때문에 왔다가 매료돼 자신도 배우고, 자세 교정 등의 목적으로 찾아왔다가 발레 자체의 매력에 푹 빠진 중장년층도 있다는 설명. “옆구리 군살이 부룩부룩 붙었어도 발레복 입는 거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70세 노인분도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지요. 오픈 마인드와 자신감이 발레의 생명이거든요. 수업 중에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이 내키는 대로 춤을 추는 ‘프리 댄스’ 시간을 갖는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인 사람들이 내면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면서 아픔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댄스 테라피(therapy)인 셈이죠.”

최 원장이 특별히 애착을 갖는 ‘발사모’(발레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 23명은 50-70대의 연령층으로, 주 2회씩 만나 발레 실습과 이론을 배우고 미술 전시회, 오페라 등의 공연도 함께 보러가는 돈 독한 사이라고. 그녀가 기자에게 ‘발사모’의 단체 카톡방과 사진을 보여주며 들떠한다. 어지간히 큰 애정이 전해진다.

타고난 무대 체질

4세부터 시작해 선화예고, 이화여대 무용과를 거쳐 현재까지. 평생 무용 한 길, 혹시

라도 다른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발레가 가장 좋지만,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발레를 하면서도 잠시 패션학교와 메이크업 학교를 다닌 적 있고요. 그래서 30여개 발레 작품 올릴 때 백조 등의 무대 의상을 다운타운에서 재료 사다가 제가 직접 다 제작했어요. 그러니 만약 발레를 계속 안 했다면, 패션 관련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타고난 무대 체질, 연예인 끼

가 있나봐요. (웃음)”

화려한 무대만이 아닌, 봉사

‘진 발레스쿨’ 원장이자, 비영리단체 ‘한미 무용 연합회’ 회장인 그녀는 2002년부터 수년째 커뮤니티 봉사 차원에서 무료로 공연도 해오고 있다.  발레 공연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수강생들이 공연하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3-12세 아이들로 구성된 팀이 공연 요청을 받고 어느 허름한 동네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파킹랏도 제대로 없고 관객보다 공연자가 더 많은 상황이었던 것. 최 원장 역시 당황했지만, 아이들의 표정에 실망의 기색이 역력한것을 보고 “얘들아, 이게 진짜 봉사야. 화려한 무대에서 주목받는 것만 바란다면 그건 봉사가 아니다”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아이들은 발레 불모지인 그 동네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공연했고, 공연자들의 진정성에 감동한 주최측은 나중에 극진한 땡큐 편지를 보내왔다.

그럼 앞으로 그녀의 계획은 뭘까. 일단 ‘진 발레스쿨’이 업무협약(MOU)을 맺은 한국의 ‘서울 발레단’(단장 박재근)은 오는 7월 14일 윌셔 이벨극장에서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날 ‘서울 발레단’ 공연의 한 파트에 ‘진 발레스쿨’이 찬조출연한다.

“저는 저의 지식을 전해서 남들의 삶이 윤택해지길 진심으로 바래요. 그래서 발레를 미술과 시, 판소리와 결합한 콜라보 공연을 기획하고, 책도 내고 싶고요. 발레가 주는 최고의 카타르시스, ‘내 몸의 자유’를 여러분들께 전파하고 싶습니다.”

진 발레스쿨 전화 : (323)428-4429

주소 : 3727 W. 6th St. #607 LA.

웹사이트 : www.balletje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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