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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춤을 추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춤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희망과 좌절, 기대와 포기 나의 모든 느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를 가식이 없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춤은 거짓이 없다. 그래서 춤은 진실하다. 춤을 추면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감정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우리는 너무나 기쁠 때 저절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지만 한이 맺힐 때도 춤을 추며 슬픔을 달래기도 한다. 옛 선조들은 긴 명주 수건을 들고 살풀이춤을 추면서 한을 풀고 마음의 안정과 함께 평화를 되찾는 지혜를 보였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기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삶은 기쁠 때보다 도리어 짜증 나고 힘들고 괴로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병이 났을 때, 사랑한 사람과 이별할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 사업의 실패 등 생각지 못한 사고와 사건이 예고 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슬픔이 찾아오면 당장 세상이 두 쪽이 날 것 같고 밤잠을 못 이르며 고민을 한다. 당해 보지 않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을까? “차라리 모르면 좋았을 텐데” 하며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기대와 믿음이 크면 클수록 그 배신의 슬픔은 분노와 증오가 되고 때로는 좌절이 된다. 더 심한 경우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자살에 이르기도 하며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생각하며 비관한다. 아니면 오히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며 복수의 칼을 갈며 비수를 준비하며 반전한다.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이 실렸다. “어떤 부잣집 노인이 말을 타고 행차하다가 앞에서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 기뻐 춤을 추는 걸 봤다. “나는 부귀영화를 다 누려도 춤출 일이 없는데 저 거지는 도대체 뭐가 좋아서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가?” 부자 노인이 춤을 추는 이유를 물어보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기뻐서 춤을 추는 이유는 세 가집니다. 첫째로, 하느님이 나를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신 걸 생각할 때에 기쁩니다. 둘째, 나는 비록 다리를 절고 있지만 다른 데는 건강하기 때문에 기쁩니다. 셋째, 죽게 되면 하나님 품 안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뻐 춤을 춥니다.”

만족의 기준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고민은 스스로 만드는 거지 남이 고민을 준 건 아니다. 똑같은 상황이 우리 앞에 닥쳐왔을 때 어떤 사람은 감사하고 용서하며 극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슬퍼하며 좌절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상항이든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잠겨 있다면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자. 시련을 주어 더 강해질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자.

심한 열병을 앓았다고 생각하자.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는 오딧세우스같이  “이번 일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로 내가 마음이 아프고 슬퍼했나 하고 웃으며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춤을 추어보자.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 것이다. 새로운 나로 다시 거듭나기 위해서……

2.19.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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